홈페지

최종편집날자

2015.03.16

홈페지
작성일 : 14-09-09 14:10
  글쓴이 : 붓꽃     날짜 : 14-09-09 14:10     조회 : 4121    
한자는 우리글이다 제  목 한자는 우리글이다
분  류
출판사 .
지은이 박문기
페이지 .
발행일 .
ISBN
보유여부
네티즌 평가   (총 0 명 참여)



생명을 사랑하고 민족의 넋을 지키고 빛내려는 박문기 선생과 같은 분들의 노력과 열정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은 학술적 차원에서 좀 더 엄밀한 연구를 진행하자는  취지로 소개합니다. 반론이 있다면 얼마든지 소개할 생각입니다. 더불어, 이 글을 일요일에 올리도록 필자가 지난 주 초에 서둘러 보내왔으나 편집부 실수로 하루 늦게 올리게 되어 미안한 마음입니다.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쓴 글이고 매주 일요일 '통일문화를 만들어가며'를 꼭 빠짐없이 올리겠다는 것이 중국시민님의 의지였는데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필자들의 이런 정성과 노력이 독자들에게 제 때 전해져 빛을 잃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자주민보 편집진)

 

▲ 박문기 선생의 저서 '한자는 우리글이다'     ©자주민보

   

[통일문화 만들어가며 235]“중국한류 키우려면 김수현 장백산광고 이해해야”(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6763)가 발표된 7월 6일에 독자 “고양이”님이 단 댓글에는 그다음 일요일에 [통일문화 만들어가며 236] “한자, 한문 그리고 쉬운 우리말 번역”으로 답을 드렸다. 그런데 7월 12일 “하나”님이 “고양이”님께 남긴 댓댓글은 최근에야 보게 되었다.

 

“고양이님께 혹시 도음이 될까해서 박문기 선생님과 그분의 저서를 소개해 드립니다. 그분이 쓰신 책들을 읽어보시면 새로운 사실을 접할 수 있을 겁니다. 마치 주류언론에서 접할 수 없는 진실을 자주민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ㅎㅎ 그분 저서의 제목이기도한 '한자는 우리글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 평소 '중국시민'님의 의견을 여쭙고도 싶었습니다만 고양이님의 질문을 보고 생각나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문장발표 후 여러 날 지나서 달린 댓글들은 필자가 제때에 확인하기 어려우므로, 만약 질문 후 1개월 내에 필자의 답변이 없으면,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독자분들이 아시고 싶은 내용은 필자의 다른 글에라도 다시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란다.


영어단어들이 우리 글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영어는 우리 글입니다》라는 책은 10여 년 전 보고 크게 웃었고 강상순이라는 특이한 저자를 기억해두었는데, 《한자는 우리글이다》는 책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또 한자를 우리 민족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은 전날 좀 들었으나 구체적인 논거가 무언지는 몰랐고, 박문기라는 이름은 아예 들어본 적 없었다. 열성독자의 귀띔 덕에 자료들을 두루 찾았더니, 《한자는 우리글이다》(박문기 지음, 양문 2001년 6월 출판, 342쪽)는 책은 얻지 못했으나 그 책과 다른 저서들의 내용소개와 인터뷰들을 통해, “재야 사학자”, “한글학자”, “친환경 농업인” 등 타이틀이 붙는 농초 박문기(朴文基, 1948~) 선생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주장들을 펴며 어떤 근거들을 제시했느냐는 어지간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한자는 우리글이라는 주장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물었는데, 박 선생의 주장에 반했거나 믿고 싶은 이들에게 타격일지는 모르겠다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틀렸다.


한자의 역사에 아직도 풀지 못한 비밀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확실하게 밝혀진 부분들도 많다. 박 선생이 제시한 근거들은 언어, 문자의 변천사를 몰랐거나 무시한 탓으로 성립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반론을 펴자면 역사자료, 문화재, 언어 등 근거가 수없이 많겠다만, 여기서는 단 박 선생이 제시한 주장과 논거들을 열거하는 한편, 한자와 중국어의 상식들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려 한다. 원본을 보지 못하고 남들이 인용한 대목들에 의존한 부분도 있기에 인용의 100% 정확성은 담보하지 못한다.

 

우선, 박 선생이 책과 인터뷰에서 거듭 주장한 게 음운학에 입각해서 글자의 소리를 보더라도 한자가 우리말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자는 중국 역사나 문화, 중국 관습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요. 모두 우리 문화와 관련이 있어요. 양국 간에 같은 문자어의 발음을 비교해 보면 중국어는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인성제자의 원리에 전혀 맞지 않아요. 소리라는 게 열리는 소리가 있으면 닫히는 소리가 있어야 하고, 또 펴나가는 소리가 있으면 걷어 들이는 소리가 있어야 하죠. 개발수폐(開發收閉)가 맞아야 해요. 가령 감옥(監獄)은 우리 말로 '감옥'하면 가두는 느낌이 드는데 중국은 '잰유이(중국시민 주: 정확한 발음은 ‘잰위’)'하거든요. 이것은 나가는 소리지 가두는 소리가 아니죠. 수갑(手匣)도 우리는 채우는 느낌인데, 중국말로 '써우'하면 풀어주는 소리예요. 글자는 하나인데 두 소리, 세 소리로 발음하는 것은 정음이 아니라 변음(變音)이죠."

 

“호흡의 발음만 살펴보아도 우리는 날숨, 들숨의 형태입니다, 그러나 지나인들의 발음은 "흐쓰(중국시민 주: 정확한 발음은 ‘후시呼吸’)"입니다. 두 발음 모두 날숨입니다. 이렇듯 한자는 중국인들의 발음과는 맞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고 오히려 우리의 발음과는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사람의 입이 하나가 되는 소리를 형상화한 "합(合)"이라는 글자를 우리 발음으로 하면 입이 닫혀 하나가 되는데 중국 발음으로 하면 "허"가 되어 오히려 입이 열려 버리며, “출입(出入)”도 중국 발음은 '츄루(중국시민 주: 정확한 발음은 ‘추루出入’)'로 본뜻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또 “학學” 자의 반절음표기를 보면 '할각절轄覺切'인데, '절切'은 아무 뜻이 없고 '할'에서 ㅎ(히읗)과 '각'에서 모음 'ㅏ'와 받침 'ㄱ'을 취해 ㅎ+ㅏ+ㄱ='학'이라고 읽는다. 그래서 그들은 '학學' 자의 반절음을 자전에 표시해 놓고도 기껏 Heie(훼- 쉐, 쉬에)로 발음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한자들이 예외 없이 완벽하게 우리 발음으로 표기된다는 게 박 선생의 논거이다.


한자음표기가 정확하지 못한 부분들도 있으나, 현대중국어의 표준어인 푸퉁화(普通话)와 우리말 한자음의 차이를 지적한 건 맞다. 그런데 그렇다 해서 한자가 우리말이라는 근거로는 되지 못한다. “옥獄“, 흡吸”, “입入”, “합合”, “학學” 따위를 고대중국어에서 “입성(入聲)”으로 분류했는데, 이런 글자들이 표준어(옛날에는 관화官话 즉 관가에서 쓰는 표준어라고 불렀고 현대에는 한때 궈위國語라고 불리다가 지금은 푸퉁화普通话라고 한다)에서 사라진 건 고작 몇백년 전의 일이고, 남방의 사투리들에서는 아직도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중국역사에서 표준어는 주로 북방의 말을 기준으로 변화발전했는 바, 북방은 민족모순과 충돌, 융합이 빈번하여 음의 변화가 심했고, 특히 통치민족의 영향이 상당히 컸다. 한자는 표음문자가 아니어서 음이 글자자체에 반영되지 않으므로 옛날 시가, 운문들과 시기별 시운서적들을 통해 어떤 글자들이 같은 운에 속했느냐를 따져서 당시 발음을 대체로 가늠하는 데, 이런 서면자료연구에는 한계가 많다.


한편 전통적으로 북방의 유목민족이 남하하면 원래 중원일대에 살던 사람들은 남으로 내려갔는데, 일단 남방에 가면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집거생활을 하였기에 음의 변화가 적다.(이는 넓은 범위에서의 이야기고, 세분하면 산골 같은 데서는 십리 사이두면 음이 다르고 백리 떨어지면 풍속이 다르다고 할 지경으로 미세한 차이가 많다.) 또한 북에서 남으로 이주해간 시기의 차이에 따라 집거지역들이 정해졌으므로, 원래 중국북방에서 어느 시기에 쓰이던 표준어의 발음이 어떠했느냐를 남방의 집거지역별로 연구해내기도 한다. 때문에 서적자료와 입말자료들을 합치면 고대 어느 시기 중국표준어의 어느 글자발음을 비슷하게 알아낼 수 있다. 입성이 남방의 여러 성에서 지금도 입말에서 그대로 쓰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성원들은 중국 남방에 가면 가끔 귀에 익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1966년 5월 14일 김일성 수상이 월북학자이며 언어학연구소 소장이었던 김병제(1905~ 1991)를 비롯한 언어학자들을 만나 진행한 담화는 “조선어의 민족적특성을 옳게 살려나갈데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정리되어 《김일성 저작집 20권》에 실렸는데,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지난날에 중국 광동에 가서 연극을 구경한 일이 있었는데 연극에 나오는 사람들이 말하는 한자음이 우리 사람들이 쓰는 한자음과 비슷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 한자음의 많은 것이 중국 광동지방의 한자음 같은 것에서 들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광둥성(广东省, 광동성)의 방언은 외지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들기로 소문났으나, 어떤 단어들은 우리말 한자음과 비슷하여 알아듣기 쉽다. 광둥성의 인구변천사가 반도와 직접적인 관계는 거의 없지만, 김일성 주석의 육감이 놀랍다. 우리말 한자음이 광둥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중국의 인구이동과 한자발음의 변화역사에 비춰보면 원래 중원일대에서 쓰이던 음이 광둥과 반도로 갈라져 갔다는 게 알린다.


남방의 중국어에 옛날 발음들이 남았고 남방사람들이 옛날 중원사람들이라고 하면, 바로 그렇기에 우리 민족이 옛날 중원에 살았고 우리 한자음이 원초발음이라는 근거로 삼을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허나 우리 조상들은 한자음이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고 자기들이 아는 발음이 결코 원초발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성삼문이나 신숙주가 세종의 명을 받들고 요동으로 가서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黃瓚)을 만난 게 한자의 실지발음을 알기 위해서라는 건 우리 조상들이 한자와 한어의 변화현상에 순응하려 애썼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훈민정음이 소리글자이기에 이조시기 우리글로 옮겨진 중국자료들이 지금은 중국 명나라, 청나라 시기의 발음을 연구하는 소중한 자료로 되는 것이야말로 두 가지 언어, 두 가지 문자의 관계사를 정확히 반영하는 터이다.


중국 남방에서 입성이 유지된 건 원래 말을 그대로 사용하였기 때문인데, 중국 북방 표준어에서 입성이 사라질 무렵에 정해진 우리말 한자음에서 입성들이 남은 건 중국어의 서사체계에서 입성이 유지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 입성을 쓰지 않게 된 다음에도 중국이나 조선이나 당시(唐詩)를 숭상해온 시인들은 입성이 있는 평수운(平水韻)을 표준으로 삼아 시를 지었으니, 입성을 모르면 옛날 규격에 맞는 시를 내놓지 못하고 따라서 망신하기 쉬웠을 것이다.

 

둘째로, 박 선생은 한자(漢字)나 한문(漢文)이란 말이 본래 우리의 말이 아니고 중국의 말도 아니며 일본사람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말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조상들은 본래 이 한자(漢字)를 참다운 글이라 하여 ‘참글’ 또는 ‘진서(眞書)’라고 불렀다. 그런데 참글이나 진서도 한글이 창제된 세종 이전에는 그냥 ‘글’이었다. 
그러면 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참글’이나 ‘진서’ 대신에 한자(漢字)니 한문(漢文)이라는 말을 만들어 비뚤게 구분하여 사용했을까? 이는 바로 우수한 우리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글이 아닌 중국 한(漢)나라 때 만들어진 것을 우리가 빌려 왔다고 억지를 부려 붙인 이름이다.”

 

한족이 중국을 통치할 때에야 문자를 스스로 그저 글이라고 했겠다만, 소수민족이 통치할 때에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구분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청(淸)나라 때에는 중요한 자리에 새기는 글이나 서류들은 만주어, 한어, 몽골어로 작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한문(漢文)”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을까? 구체적인 사료를 찾기 힘들어서 그저 잠깐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일본어를 좀이라도 접촉하신 분들은 한자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와 생겨난 일본문자를 “가나(かな)”라고 부름을 아실 것이다. “かな”의 한자표기는 “仮名”이다. 여기서 일본식한자 “仮”는 “가짜 가(假)”와 같은 뜻이기에 이 글자를 쓰지 않는 중국에서는 “쟈밍(假名)”이라고 표기한다. 한편 일본어에 “마나(まな)”라는 개념이 있는데 한자로는 “真名”혹은 “真字”로서. 가나에 대하여 한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 일본인들이 한자를 “진짜글자”로 간주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근거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한자를 진서라고 숭상하면서 훈민정음이 나온 뒤에서 언문이니 암클이니 하면서 얕본 것과 어슷비슷한 현상이다. 일본에서 “간지(かんじ, 漢字한자)”, “간분(かんぶん, 漢文한문)”이라는 개념이 언제 나와 언제부터 널리 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한나라 때와 직결시키는 것 같지는 않다.


참고로 베트남에서는 옛날에 한자를 “儒字”라고 표기했다는데, “유생, 선비들이 쓰는 글자”쯤이 되겠고. 베트남어 발음을 몰라 유감스럽다. 베트남인들이 자체로 만들어낸 문자는 “쯔놈(字喃)”이라고 불리면서 오랫동안 쓰이다가, 프랑스전도사들이 주도하여 만든 라틴화베트남문자에 밀려서 지금은 베트남에서 한자도 쯔놈도 문화재들에나 남은 상황이라 한다.


박 선생은 또 이렇게 주장한다.

 

“원래 우리는 한자(漢字)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어요. 조선왕조실록에 10여 번 나올 뿐 승정원일기나 일성록에는 단 한번도 한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요. 우리말에 한(漢)이라는 글자는 인명이나 지명에 쓰일 때는 하늘의 은하수를 상징하기도 했지만 대개 지극히 미천한 남자를 일컫는 말로 쓰였거든요. 예를 들면 백정은 도한이(屠漢伊), 소금 굽는 자를 염한이(鹽漢伊)라 했어요. 또 조선시대 소를 밀도살하면 크게 처벌 받았어요. 그래서 관청에 끌고 가 허가를 받는데'漢'이라는 낙인을 찍어 줬어요. 우리는 지금도 행실이 나빠 마땅히 죽어야 할 놈에게 漢자를 쓰거든요. 괴한(怪漢), 치한(癡漢), 악한(惡漢), 색한(色漢)이 다 그런 말이죠. 이로 미루어 우리 조상들이 우리 문자를 한자(漢字)라는 이름으로 일컬었을 리가 없죠. 한자라는 말은 조선총독부가 우리 정음(正音)을 교란시키고 국격을 낮추기 위해 상투적으로 내세웠던 말이고 급기야는 조선어한문폐지령까지 내린 일이 있었으니까요. 이후 박정희의 우민화 정책도 한 몫을 했죠.”

 

《수호지》같은 중국고전소설들을 접한 이들은 아시겠지만 “하오한(好漢, 호한, 호걸, 훌륭한 사나이)”, “따한(大漢, 대한, 덩치 큰 사나이)” 같이 “漢”자가 좋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하다못해 “한즈(漢子)”도 “사나이”라는 뜻이지 폄하하는 뜻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옥편》에서 “漢”의 뜻풀이 중 하나로 “놈”을 제시하고 “丈夫賤稱(장부의 천한 칭호)”라고 설명했다고 해서 중국어에서 “漢”이 나쁜 뜻을 갖는 건 아니고, 우리 조상들이 누구를 멸시하는 뜻으로만 여긴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호한”은 신기철, 신용철 씨가 편찬한 《새우리말 큰사전》에서 “의협심이 많은 훌륭한 사람.”으로 풀이했었고, 이희승 감수를 자랑하는 민중서림의 《엣센스국어사전》에서는 “의협심이 많은 사람”으로 풀이했었다. 최신판들에도 있는지 모르겠다만, 쟁쟁한 어학자들이 “호한”을 사전에 수록했다는 건 시사해주는 바가 많지 않은가. 하물며 《옥편》에서는 “漢”을 “中國之別稱(중국의 딴 이름)”이라고도 뜻풀이하지 않는가. 16세기에 활동한 관료이자 문인인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선(稗官雜記選)》에는 “金世澣以漢語救人命”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金同知世澣 嘗以軍官赴燕 效作漢語 雖聲韻不似 而常用之言 尙十通一二 每逢人輒說漢語 人頗笑之...”


동지벼슬을 했던 김세한이라는 사람이 군관으로서 중국에 갔다가 한어(漢語)를 배웠는데, 발음은 비슷하지 않으나 늘 쓰는 말은 열에 한둘쯤 통하여 남만 보면 한어를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웃었다는 뜻이다. 이야기는 계속하여 어느 해 명나라 복건(福建, 지금의 푸잰성)의 어민들이 표류하여 호남 흥양에 이르렀다가 왜적으로 오인되어 300여 명 죽었고, 또 한 척의 배가 섬에 머무르게 되니 수군절도사로서 군사를 거느린 김세한이 상대방의 옷차림을 보고 한어로 물어보아 복건사람임을 알게 되어 모두 서울로 보냈다가 요동으로 내보내 명나라에 넘겨주었고, 사람들을 죽인 관리들은 극형을 당할 뻔 하다가 마침 사면을 받았다고 적은 뒤, “김의 한어가 200명 생명을 구했으니 어찌 비웃겠느냐(金之漢語 活了二百人性命 豈可非笑乎)”고 끝냈다. 패설모음집이 마침 수중에 있어서 전날 인상이 남은 대목을 잠깐 뒤적였을 뿐인데도 이처럼 명나라에서 쓰는 말을 조선사람이 “한어(漢語)”라고 표기한 자료가 나오는데, 마음먹고 찾아본다면 “漢”을 중국의 문자, 언어와 결부시킨 증거들이 얼마든지 있으리라 짐작된다.

 

셋째로, 박 선생의 주장 중 하나가 원래 자기나라의 글자라면 어느 글자나 단음(單音)으로 발음할 수 있어야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거의 다 복음으로 발음하고 있으며 오직 우리만이 어떤 글자든지 단음으로 발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한자를 단음으로 발음하는 민족은 우리뿐”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한어의 발음특성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언어에서 단음과 복음은 경솔히 단언할 문제가 아니다. 왼쪽 “좌(左)”를 요즘 일부 한국인들이 표기하는 식으로 표기하면 “주오”인데, 그렇다 해서 복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좌(左)”는 실제발음이 “줘”에 가까운데, 중국학자 “左大培”를 우리말 한자음으로 적으면 “좌대배”고, 한국유행식으로 적으면 “주오따페이”이며, 필자 나름대로 음을 적는다면 “줘따페이”이다. 우리 글로 “주오”라고 적던 “줘”라고 적던 한자로는 단음절로 인정되고, “培”도 우리글로 표기하여 두 글자가 생길 뿐 한어로는 단음절로 친다. 이는 겹모음 때문이다. 어떤 언어든지 그 언어의 자체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단음인가 복음인가를 결정해야지 다른 언어로 표기해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해서는 안 된다. 영어나 다른 서양언어를 배운 이들은 외국단어를 우리글로 표기할 때 몇 글자로 된다고 해서 원래음이 꼭 몇 음절이라고 단정할 수 없음을 잘 알 것이다.

 

넷째로, 박 선생은 관습을 한자가 우리글이라는 근거로 삼았다.

“예컨대 '家'(가)는 집을 뜻하는 면(갓머리)자와 돼지 시(豕)자가 합쳐져 '집안에 돼지가 있다'는 뜻인데 중국에서는 돼지를 집안에서 키우는 풍습이 전혀 없다. 반면 우리는 전라도, 제주도에 이 풍습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속단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1949년에 성립된 후, 서남지방의 소수민족지역들에서 돼지 따위를 집에서 키우는 풍습을 없애는 게 커다란 과제로 되었었다. 다락집에 사는 어떤 민족들은 윗층에 사람이, 아랫층에 짐승이 살았는데 위생에 나쁜 그 풍습이라고 설명해도 잘 먹혀들지 않았던 것이다. 한족지구의 경우에는 사람과 돼지가 한 방에서 산다는 말은 들은 적 없으나 집 바로 곁의 마당 안에 돼지우리를 만들어서 먹이를 던져주거나, 낮추 판 돼지굴 위에서 사람이 똥을 누어 돼지에게 먹이는 건 고작 20년 전에도 드물지 않은 풍경이었다.


한자의 모양만 보고 풀이한다면 “갓머리” 아래에 “소 우(牛)”가 붙은 글자는 “라오(牢)”인데 “집안에 소가 있다”는 뜻으로 될까? 허나 그렇지 않다. 이 글자는 짐승우리, 고대제사에 바치던 짐승, 감옥, 든든하다 등 뜻을 가질 따름이다.

 

박 선생은 이밖에도 “단(短)”, “장(葬)”, “조(弔)” 등 글자와 “조공(朝貢)”, “조정(朝廷)”, 등 단어들을 나름대로 풀이했는데, 이치에 닿는 것도 있지만 비약이 심한 것들도 있었다. 특히 혼인(婚姻)과 관계되는 글자와 단어들의 풀이는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한자가 상형문자라고 하여 어림짐작하여 갖가지 해석을 붙이는 사람들은 여러 나라에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중국사람들은 뭔가 쏜다는 “써(射, 사)”와 키가 작음을 표시하는 “아이(矮, 왜)”가 뒤바뀌었다고 주장한다. “射”를 갈라보면 “몸 신(身)”과 “치 촌(寸)”으로 이뤄졌으니 몸이 한치라는 뜻이라, 난장이를 말하지 않는가? “矮”는 “화살 시(矢)”와 “던질 위(委)”로 이뤄졌으니 화살을 내던진다는 게 바로 쏜다는 뜻이 아닌가? 때문에 두 글자를 바꿔줘야 뜻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느니라. 그럴듯 해보이는 설이지만 학자들이 두 글자를 참대, 청동기, 갑골문 등 역사자료에 근거해 변화역사를 보여줬다시피, 글자들이 뒤바뀌었다는 설은 재담거리로는 충분하나 학술적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한자가 우리글이라는 이색적인 주장이 성립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은 변화의 각도에서 문제를 대하지 않은데 있다. 한자는 오랜 세월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한어도 오랜 세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 대륙과 타이완이 번체자냐 간체자냐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도, 어느 일본청년이 중국에 처음 왔다가 깜짝 놀라 “중국에서도 한자를 쓰네요?!”라고 놀랐다는 것도, 중국인들이 한국, 베트남에 가서 한자유물들을 보면서 은근히 흐뭇해하는 한편 한자가 공식문자에서 밀려난 걸 아쉬워하는 것도 모두 한자가 얼마나 복합적인 의미를 갖느냐를 말해준다.


변화역사를 무시하면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풀이하여 결국 그릇된 답을 얻어내게 된다. 민족문제도 나라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알고 보니 박 선생처럼 한자를 우리 글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옛날의 은(殷)나라가 동이족(東夷族)의 나라로서 우리 민족조상들이 세운 나라다(단군조선(檀君朝鮮)이 중원 땅에 세웠던 하나의 제후국(諸侯國)이라고도 한다), 갑골문이 이 나라에서 쓰였고 갑골문이 지금까지 발견된 제일 오랜 한자이니 한자는 우리글이고 우리말이라는 식이다. 또한 은나라가 화하족(華夏族)의 나라인 주(周)나라에 멸망되어서 역사와 문자를 타민족에게 빼앗겼다고 설명한다.


옛날에는 은나라가 망한 다음 유족인 기자(箕子)가 주나라에 의해 조선에 봉해졌다는 기자조선(箕子朝鮮)설이 2천 년쯤 유행되었다. 그래서 기자의 후예로 자처하면서 자랑스러워한 조선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 와서는 정반대로 역사를 풀이하는 판이다. 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다, 우리 조상들은 중국에서 동이로 불렸다, 때문에 은나라는 우리민족의 나라다, 공자는 은나라의 후예다, 때문에 공자는 우리민족이고 한국인이다,... 이런 식의 비약이 제법 유행되는 모양이다. 만 번 양보해서 은나라의 주인이 동이족이었다고 치면 은의 후대인 공자가 이(夷)를 깔보는 발언을 거듭했으니 조상을 모른 바보였는가? 그리고 기원전 11세기경 은이 망한 다음 많은 사람들이 주나라의 통치 하에 들어갔고 또 왕족 가운데 미자(微子)가 송(宋)에 봉헤져 은나라의 혈맥을 이어갔는바 빈국(賓國, 손님나라)로서 주의 다른 제후국들과 다른 지위를 갖고 특수한 대우를 받았다. 공자는 바로 미자의 후예이며, 은의 후예들은 춘추시대에 상당히 활약했다. 수백 년 전쟁이 벌어진 끝에 워낙 문명한 종족으로 자처하던 사람들이 다스리던 중원의 여러 나라들이 나중에 미개하다고 치부되던 진나라에 의해 기원전 3세기에 통일되었고, 진이 단명으로 망한 다음 곧 한나라가 생겨났으며 이로 하여 뒷날 “한(漢)”이 나라, 종족, 문화, 문자, 언어를 가리키는 글자로 되었다. 은나라 후예들의 상당수가 나중에 지금 말하는 한족의 구성원으로 된 게 역사의 진실이다. 여기에다가 빼았겼느니 뭐니 하는 거야 말로 어불성설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은 황제(黃帝)의 후손이라거나 “얜황즈쑨(炎黃子孫, 염제와 황제의 자손)”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누구도 자기가 누구의 순수한 후손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또 어느 마을도 자기네 마을이 4, 5천년 동안 순수하게 누구의 피를 이어왔다고 불어대지 않는다. 수많은 종족들이 부딪치고 싸우고 섞이면서 한이라는 개념이 생겨나서 점점 커졌고 한때는 골수에 사무치던 원한이 사라지면서 엉키게 된 것이다. 한족이 민족의 개념이라기보다는 문화집단이라는 주장이 있고, 한족이야말로 세계에서 제일 큰 혼혈아 무리라는 농담도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수많은 고대민족들에 기초한 한족들이 동족의식을 갖는다. 이런 역사와 현실을 무시하고 추측과 비약에 의거하여 “지나족”이나 “화하족”이니 출처불명의 엉터리개념들을 쓰면 근거가 빈약하거니와 아무런 이득도 없다. “지나인”이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고 중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새록새록 단상 548] “일제가 조작한 가짜중국인 스타 리향란의 아름다운 개심”(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7168)을 참조하시라.


이렇게 설명하면 어떤 이들이 필자가 중국의 사료, 자료들에 세뇌되었다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马迁)부터 시작해 중국의 사관들이 거짓말만 늘여놓았다고 믿는 사람들이 한국에 더러 있으니 말이다. 물론 봉건시대 사관들의 기록에 문제가 많았던 건 사실이다. 단 비약적인 추리를 하는 이들도 그런 역사책에 의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글쎄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고 해서 반대되는 결론들을 얻어내지만 역시 책은 뒤지는 법이다. 혹시 믿기 어렵다는 문자자료들을 젖혀놓고 문화재들로 따져본다? 은나라, 주나라 및 송나라와 중원 다른 나라들의 문화재들은 이미 대량 발굴되었고 한자들이 새겨진 청동기들도 필자가 박물관들에서 숱해 보았다. 헌데 중국의 동북부(한국에서 ‘만주’라고 속칭하는 곳)나 반도에서 같은 시기의 한자가 있는 문화재가 얼마 나왔는가? 단군조선이던 기자조선이던 한자와 관계되는 문화재가 있는가? 월북학자 홍기문(1903~ 1992)은 1957년에 내놓은 《리두연구》(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출판사 1957년 12월 출판발행, 도합 461쪽)에서 우리 민족이 한자를 알게 된 시기와 널리 쓰인 시기를 분명히 구분하면서, 공용적 문자로 사용된 시기를 상당히 늦게 잡았다.

 

“고구려에서 한자가 공용적 문자로 사용된 증거로서 현재까지 드러난 가운데 가장 오랜 것은 414년에 세운 광개토경왕(廣開土境王)의 비문을 위시해서, 최근 경주서 발굴된 그와 같은 년대의 호우(壺杅)와, 그 역시 비슷한 년대의 소위 모두루총(牟頭婁塚)으로 일컫는 고구려 고분의 지문 등이다. 이렇게 5세기 초에 이르러서 한자를 사용한 증거가 많이 드러나는 것도 한갓 우연한 현상만으로 보아 버리기는 어렵다. 더구나 광개토경왕의 비문 가운데는 <웃대의 예전 임금들로부터 내려오면서 무덤 우에 돌비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무덤직이의 연호(烟戶)들을 섞바뀌게 하였는데, 광개토경호태왕(廣開土境好太王)이 조상 임금들을 위해서 모두 무덤 우에 비를 세움으로써 그 연호를 새기여 석바뀌지 않게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이렇게 광개토경왕 이전에는 없던 돌비를 광개토경왕 때로부터 세우기 시작한 데서도 한자의 공용이 더 한층 공고해진 것을 엿볼 수 있다.”(8쪽)

 

이두(吏讀)의 권위자인 홍기문 선생만큼 한자와 한문에 밝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한자가 우리글이라는 주장을 들으면, 홍선생 같은 분은 그럼 왜 우리 조상들이 굳이 이두를 만들어서 불편스럽게 쓰다가 드디어 한글을 만들어냈는가고 질문할 가능성이 높겠다. 누가 이런 물음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줄 수 있을까?


유럽의 공통어였던 라틴어를 놓고서는 쟁탈전이 벌어지지 않는데, 동아시아의 공통어였던 한문, 한자를 놓고는 쟁탈전이 벌어지는 게 참 희한한 현상이다. 혹시 라틴어는 죽은 언어로 됐으나 한자와 한어, 한문은 지금도 쓰이기에 발명권, 주도권을 다투는가? 한어가 우리글이라는 주장이 언어학적 견지에서보다는 문화학, 사회학적 견지에서 연구할 가치가 더 크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노승대 지음, 도서출판 무한 1999년 7월 초판1쇄, 334쪽)라는 책이 있다. 저자 노승대(1950~) 씨가 숱한 고장을 돌아다니면서 특이한 바위들을 찍어서 자료를 모았기에 볼 맛이 괜찮은 책인데, 우리 민족의 거북사랑을 적은 다음 이렇게 썼다.

 

“... 또한 어부의 그물에 걸린 거북이를 잘 대접하여 바닷속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한민족의 오랜 풍습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거북이 같은 놈’이라고 하면 ‘’마누라를 남에게 빼앗긴 얼빠진 사람‘을 일컫는다. 우리가 중국문화의 단순한 수입국이었다면 어찌해서 거북이를 상서로움의 상징으로 삼아 지명地名, 인명人名에 수 없이 사용할 수 있었겠는가. 또 우리 전통의 기도터에 알터와 함께 등장하는 거북 형태의 바위돌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81쪽)

 

“구지가(龜旨歌)”에 등장하는 거북이를 우리 민족이 옛날부터 자발적으로 좋아했을 수는 있다. 허나 중국에서 거북이가 못난 남편을 가리키기 때문에 중국사람들은 거북이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당시를 좀 읽어본 사람들이 알다시피 거북이는 좋은 형상으로 나왔고 9세기에는 육구몽(陸龜蒙, ?~881)이라는 시인도 있었으며 금거북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풍습도 있었다. 거북이가 속어에서 나쁜 뜻으로 쓰인 건 대략 명나라 때부터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이 여건상 중국의 고상한 아문화(雅文化)는 서면자료를 통해 많이 받아들였으나 입말의 변화와 직결되는 속문화(俗文化)는 적게 받아들였기에 거북이의 새로운 상징성이 우리 민족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혹시 전해졌더라도 바람난 여편네를 둔 남편을 이르러 “오쟁이 졌다”는 고유어표현이 있는 상황에서, 퍼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겠다.


“우리가 중국문화의 단순한 수입국이었다면”으로 시작되는 군더더기가 단어변화역사를 몰라서 생겼다기보다는 중국과 중국문화를 대하는 심리가 삐끗해서 생긴 것 같아 무척 아쉽다.


필자가 이 글에서 거든 근거들은 모두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들이다. 바로 그러하기에 특이한 설을 받쳐주는 증거들이 빈약한 게 안타깝다. 배운 건 배웠다고 인정하는 게 상리건만 괜히 승벽을 부리면서 아까운 정력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가. 
한자나 한문이 일으킨 발명권쟁론은 큰 풍파를 일으키지 못했다는데, 한자사용여부는 오랜 세월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이에 대하여 필자의 견해는 명백하다. 고대자료들을 언급하는 경우를 내놓고는 우리글전용이 바람직하다고. 한자나 한문이야 옛날 조상들이 빌려다 쓴 지팡이이기 때문이다. [2014년 9월 6일]

 

 

첨부자료 1종: 《한자는 우리글이다》

양문 2001년 6월 출판, 342쪽,

 

책 소개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의 주된 식량이었던 '콩'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인본사상과 생명농업'이라는 맷음말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과 생명, 문화의 유기적 관계를 작가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풀어내고 있다.


우리 글을 중국의 글이라 생각하고, 우리 종자는 남에게 모두 빼앗긴 채 이제는 그들에게 종자를 수입해 쓰고, 남의 농법을 우리 농법인 양 착각하며 사는 현실,


저자는 『한자는 우리 글이다』를 통해 단지 문자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만 역점을 두지 않고, 우리 민족 고유의 삶을 송두리째 저당 잡힌 채 의식없이 살아가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꼬집고 있다.우리는 지금까지 원칙 아닌 원칙으로 가르치고 배워 왔다.

 

작가 소개 
박문기, 1948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선대의 독특한 교육관에 따라 신식교육은 거의 받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대로 한학을 공부하였다.


어머니 최영단 여사를 보살펴준 이인(異人) 인정상관이 우리 민족의 신수(神獸)인 맥(貊)의 형상을 하고 태어났다는 내력을 전해듣고 자란 그는 맥에 대해서 조사하다가 '무르팍에 꾸덕살이 백히도록' 연구해야 하는 역사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물려받은 농사일도 돌보고 글도 읽고 저술을 하며 '전통적인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한국 쌀의 가장 오래된 토종인 '다마금(多摩錦)' 종자를 발굴하여 일체의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재배하여 '녹색품질인증'을 받아 공급하는 특이한 농부로도 알려져 있다.


지은책으로는 <맥이>, <대동이>(전6권), <본주>(전2권) 등이 있다.

 

목차 
제1장 문자로 본 우리 역사 (15)
들어가는 말 (17)
콩과 장(醬) (21)
복희씨와 팔괘 (23)
역법(歷法)의 내력 (29)
조개 (40)
역사적 기록들 (46)
태백산 (51)
성씨 이야기 (54)
임검 (63)
사물(四物) (67)
단골(檀骨) (71)
조(朝)자와 우리 역사 (77)
제2장 콩과 우리 문자 (81)
콩에는 우리 역사가 들어 있다 (83)
콩의 원산지는 우리 땅이다 (86)
콩에는 우리 문화가 들어 있다 (92)
콩과 건강 (96)
콩과 나라의 운명 (98)
콩은 코에서 나왔다 (101)
팥과 녹두 (103)
콩과 태극 (107)
콩노래 (115)
콩 이야기 한토막 (119)
음악의 시원(始原)콩 (123)
콩(太)과 개(犬) (126)
신(神) 이야기 (130)
서양인과 개의 유사점 (135)
토종의 변신 (144)
수입 코 과연 안전한가 (148)
콩과 솟대 (156)
소금은 왜 素金인가 (160)
외제귀신, 유태귀신 (162)
콩과 전통혼례 (165)
자운영 꽃길 (171)
제3장 쌀농사와 숟가락 (177)
벼농사와 문자 (179)
부루단지 (185)
쌀 이야기 (187)
숟가락의 유래 (191)
숟가락과 우리 문자 (194)
밀과 개떡 (199)
숟가락 대(對) 젓가락 (202)
쌀농사는 우리의 생명이다 (206)
제4장 우리 문자의 기원 (213)
들어가는 말 (215)
모(母)자가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217)
문자는 생활의 반영이다 (221)
씨(氏)자의 유래 (225)
성(性)과 문자 (230)
하늘에서 내려온 민족 (233)
혼인과 관련된 글자들 (236)
소리와 문자 (240)
남과 여 (245)
좆바위의 영험 (249)
해탈(蟹脫) (253)
반절법(反切法) (260)
문제는 교육이다 (263)
제5장 이론(夷論) (265)
활의 유해 (267)
활 은 군자의 것이다 (272)
활 이야기 (277)
이(夷)의 바른 이해 (289)
무당과 의원 (293)
이(夷)와 한(漢) (298)
제6장 녹도서(鹿圖書)와 진서(眞書) (305)
사슴 발자국, 새 발자국 (307)
과두문자(蝌蚪文字) (311)
고구려의 멸망을 예언한 녹도서 (317)
한자(漢字)가 아니라 진허(眞書)다 (321)
음서(陰書)와 양서(陽書) (324)
이치에 맞지 않는 중국의 말과 글 (329)
글말과 입말 (337)
맺는 말: 인본사상과 생명농업 (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