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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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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1-07 10:16
[여행,여가] < 위찬미 방북기 > 북녘동포들의 하루일과, 집이나 직장없어 떠돌거나 방황하는 사람 없다
 글쓴이 : 붓꽃
조회 : 3,435  

조국이 해방된 지 어느덧 69년이 되었다. 그러나 조국은 아직도 갈라져 있다. 민족이 화해하여 통일되면 대박이 난다는데 왜 시간이 갈수록 분단의 벽은 점점 더 두꺼워지는 것일까?

 

북을 더 잘 이해하는 만큼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필자는 10월 24일부터 31일까지 북을 방문하여 북녘땅 여러 곳을 다니며 듣고 본 것을 바탕으로 하여 북 동포들의 사는 모습을 소개한다.

 


 

 

<방북 취재 10> 시골 아저씨와 고등학생의 일과

 

이산가족 인터뷰

 

우리 일행 중 한 분인 보스톤의 김용만 선생은 어려서 전쟁통에 부모님 따라 월남한 이산가족이다. 그분은 부모님이 이남에 계시고 부모님 친척들이 모두 이북에 계신다. 그는 10여년 전에 재미동포전국연합회를 통하여 부모님의 친척들을 찾았고, 지금까지 2.3년에 한 번씩 외삼촌, 고모, 이모와 그들의 식솔들은 만나서 부모님의 한을 풀어드리고 있다. 지금은 어머니만 이남에 살아계시고 이북에는 외삼촌과 그의 가족들만 살아계신다. 그는 오늘 황해북도 린산리라는 산골에 사시는 외삼촌과 외사촌 그리고 외사촌의 딸을 만나는 날이어서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나는 김 선생의 외삼촌과 딸의 생활이 궁금하였다. 중년의 시골 아저씨와 시골 고등학생 소녀의 생활은 어떠한지 알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가 외삼촌 식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을 따라 나섰다. 우리가 해외동포 사업국에서 경영하는 모란봉면회자숙소에 도착하니까 가족들이 벌써 하루 전에 도착하여 그 곳에서 묵으며 김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 선생과 외삼촌은 만나자 말자 서로가 안고 반갑게 손을 잡고 흔들며 안부를 물었다. 모두 반가워서 서로의 손을 놓지 못했다. 그리고 함께 방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며 김 선생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선물도 전하였다. 나는 김 선생과 외삼촌 가족들의 허락을 받아 아버지와 딸을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다음은 16세의 신현화 학생과의 대화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기자: 지금 고등학교 학생입니까?

현화: 린산리 고급중학교 2학년입니다.

 

기자: 학교는 어떤 종류가 있고 각 학교에서 몇 년씩 공부합니까?

현화: 유치원 1년, 소학교 4년, 초급중학교 3년, 고급중학교 3년, 이렇게 11년이었는데 이제            12년 의무교육제도로 바뀌었습니다.

 

기자: 어느 단계의 학교가 1년 더 늘었습니까?

현화: 소학교가 1년 더 늘었습니다.

 

기자: 현화 학생은 아침 몇 시에 일어나고 학교는 몇 시에 가는지, 보통 날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말해 주겠어요?

현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하고, 7시 반에 집을 떠나면 8시에 학교가 시작됩니다.  6시간의 수업을 하고 2시에 끝이 납니다. 점심 먹고 동무들하고 운동도 하고 놀다가 5시부터 6시까지 물리 소조반에서 물리 실험을 합니다. 물리학 교원으로부터 지도를 받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나면 숙제하고 10시쯤에 잡니다.

 

기자: 과외 수업하는데 돈이 듭니까?

현화: 돈이 들지 않습니다.

 

기자: 운동을 한다고 했는데 무슨 운동을 합니까?

현화: 배구를 합니다.

 

기자: 가족은 몇입니까? 가족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현화: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삽니다. 할아버지는 집에 계시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리 협동농장에서 일하시고, 오빠는 군대에 있습니다.

 

기자: 현화 학생은 집안일을 도와줍니까?

현화: 예 어머니가 늦게 돌아오시거나 바쁘시면 제가 식사도 준비하고 할아버지가 돌보시는 돼지 먹이도 주고, 다른 집안일도 돕습니다.

 

기자: 성적은 어떤가요?

현화: 지금 5점 만점에 5점 받고 있습니다.(수줍은 표정으로)

 

기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군요. 맞습니까?

현화: (웃기만 헀음)

 

기자: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으세요?

현화: 물리학 교원이 되고 싶습니다.

 

기자: 교원이 되려면 대학에 가야 하나요? 어느 대학에 갈 생각인가요?

현화: 황해도에 성균관대학이 있습니다.

 

현화 학생은 산골 출신이어서인지 수줍어하였지만 나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주었다. 현화의 말에서 북의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가 있었다. 현화는 과도한 노동이나 공부에 시달리지 않는 것 같았다. 집안일도 돕고, 운동도 하고, 학교에서 그룹활동도 열심히 하는데 성적을 잘 받는 것이 놀라웠다. 또 시골 출신 학생이 건강한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교원이 될 꿈을 갖고 전국적으로 이름있는 대학에 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였다. 이남에서 입시를 위하여 초등학교부터 과외공부와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다음은 현화의 아버지 신영균 씨(45새)와의 대화 내용이다.

 

기자: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부인은?

신:    나는 협동농장에서 현금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부인은 농장 노동자입니다.


기자: 무슨 공부를 하셨습니까?

신:   사리원 농대에서 축산공부를 하였습니다.

 

기자: 농장에서는 어떤 농사를 주로 하고 근무시간이 어떻습니까?

신:   논이 40%이고  밭이 60%입니다. 밭에는 땅콩, 고추, 양파, 파, 고구마를 주로 심습니다. 아침 7시에 출근하여 12시부터 2시까지 쉬고 6시에 퇴근합니다. 토요일에는 3시간씩 토요학습에 참석합니다.

 

기자: 토요학습에서는 무얼 합니까?

신:    나라 정책도 공부하고 협동농장의 발전을 위한 토론도 합니다.

 

기자: 주민들은 분조관리제 실시를 어떻게 봅니까?

신:   모두 좋아합니다. 분조제를 실시한 후부터 일꾼들이 일에 더 열성을 냅니다. 우리 아이 엄마는 아주 논에서 삽니다. 올해는 풍년이 들어 모두 신이 나 있습니다. 전에 3톤 수확한 자리에서 올해는 5톤이 나왔습니다.

 

기자: 고난의 행군 때에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굶은 사람이 많았습니까:

신:    도시 사람들이 힘들었지만, 우리 마을에는 굶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자: 부인이 아이를 낳게 되면 일을 못 했을 텐데, 산후에는 무슨 보장이 있습니까?

신:    산후 합쳐서 1년을 쉴 수가 있습니다.

 

기자: 안팎이 다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는 누가 키웁니까?

신:   마을마다 보육원이 있어서 애 키우는 걱정은 않습니다. 일하다가도 아이가 젖먹는 시간이 되면 직장에서 젖 먹이러 보육원에 가도록 허용합니다. 

 

기자: 협동농장의 근로자가 사망하여 고아가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신:   협동농장에서 돌보다가 군에서 관리하는 애육원에 보냅니다.

 

기자: 따님이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교육비는 어느 정도 준비해야 합니까?

       그리고 따님의 대학입시 준비를 위하여 부모님은 어떤 노력을 합니까?

신:   우리가 딸 아이의 대학 입시를 위하여 특별히 할 일은 없고 교육비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대학에 입학만 허락되면 모든 경비는 국가가 다 부담합니다.

 

기자: 부모님의 특별한 노력 없이도 현화가 공부를 잘 하니 좋으시겠습니다. 그런데 농촌에는 집집마다 텃밭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집에 텃밭이 있습니까? 또 개인 가정에서 집짐승도 키울 수 있습니까?

신:    예. 우리 집에는 70평의 텃밭이 있습니다. 그리고 염소 3마리, 돼지 2마리, 오리 5마리, 닭 5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연로 보장으로 집에 계시는 아버님이 주로 돌보십니다.

 

기자: 연로 보장은 무엇이고 몇 살이 되면 그 혜택을 받습니까?  아버님 연세는 얼마십니까?

신:    연세가 지금 86세이고 연로 보장은 60세부터입니다. 연로 보장은 노인들이 일을 하지 않고도 국가에서 배급과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기자: 아버님은 연세가 높으신데 건강하십니까?

신:   귀가 좀 어두운 것 외에 다 건강하십니다. 자전거를 타고 산에도 다니시고 집안일을 많이 도와 주십니다.

 

기자: 저녁 식사 후에 가족들이 텔레비젼 보러 어느 집에 모이거나 농장회관에 갑니까.

신:   텔레비젼은 집집이 있습니다.

 

기자: 이런 걸 물어봐도 될지 모르겠는데 혹시 당원입니까?

신:   올해 당원 원서를 냈습니다. 원서를 내면 1년간 군당에서 검토를 합니다.

 

기자: 당원이 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   리 당에서 추천을 받고 2명의 보증인이 있어야 하고 당규약을 통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봉사도 더 많이 하고 주민들에게 모범이 돼야 합니다.

 

기자: 당원 되기가 쉽지 않군요. 면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제한으로 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그의 꾸밈없는 말 속에서 시골 동포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영균 씨는 텃밭에 채소를 키우고 집짐승도 키우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텔레비전이 집마다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 한 사실이었다. 영균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의 시골 생활이 꽤 윤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확이 늘면 분배를 더 받도록 하는 새 농촌관리 방식인 분조관리제 혹은 포전담당책임제를 실시한 후 농장 일꾼들이 많이 고무되어 있음을 신영균씨는 아내가 논에서 산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김지석 북한 수매양정성 부상이 올해의 수확량이 작년보다 5만 톤이 더 많은 571만 톤이라고 밝힌 바 있다. 100년 만에 온 최악의 가뭄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수확을 한 것이 새 농촌관리제도와 무관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포전담당책임제를 실시하면서 농촌 주민의 실생활에 변화가 일어나고 식량 증산효과도 가져온 것을 보면, 김정은 시대 농업시책이 농촌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고 농촌사회에 완전히 정착한 것으로 보였다.

 

또한, 딸의 등록금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나 1년간의 산후 휴가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혜택이다. 나도 미국에서 산후 6주 만에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고된 일을 하였고, 아이들 대학보낼 때는 등록금을 보태기 위해서 두 개의 직장에서 일한 기억이 난다. 60세만 되면 은퇴하고 사회보장을 받는 제도도 인상 깊었다.

 

이들이 사는 시골 이야기를 들으면서 집안에 힘든 일이 생기면 이웃끼리 서로 돕고 살던 우리의 옛 어른들 모습이 떠올랐다. 북 동포들은 농장을 협동으로 경영 관리하고 모두가 주인의 마음으로 살고, 마을 사람들은 한 가족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웃에 불행이 닥치면 주민들에 의해 당장 파악이 되고 집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신영균 씨 부녀의 말이나 행동에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지 못하는 자유로움과 느긋함을 느꼈다.

 

이들과의 대화는 바로 옆 집에 누가 이사왔는지 아니면 누가 이사갔는지 알 수도 없고,  또 이웃에 살던 노인이 죽어 일주일이 지나도 못 알아차리는 우리 사회의 폐쇄성을 생각나게 하고 비교하게 하였다. 우리가 사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다들 어려움도 혼자 버티고, 혼자 외로워하고, 그리고 혼자 슬퍼하다가 끝내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이남의 청소년과 노인 자살율이 세계 최고라는 보도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모든 주민에게 직장과 주택을 보장하는 사회주의 북은 모든 주민에게 무상치료, 무상교육도 보장한다. 그리고 각 군에서 관리하는 애육원이 있고 마을마다 보육원이 있어서 동포들은 아이 키우는 일이나 고아들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노력한 만큼 더 많은 분배를 받을 수도 있어서 농부는 종일 논에 있어도 신이 난다고 한다.

 

이번 인터뷰에서 북은 길에 집 없는 사람이 떠돌고 다닐 일 없고, 직장 없어 방황하는 젊은이가 없고, 과외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없고, 교육비에 허리가 휘거나 기러기 부부가 되는 부모가 없고, 또 노인들의 외로운 한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김 선생이 외가댁 가족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호텔로 돌아가려는데 면회소 라디오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세상에 부럼 없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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