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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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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10 07:40
[정치] 북핵 이야기 (종합), 10년전 오늘 발표한 북의 핵보유 성명
 글쓴이 : 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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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10년 이야기

10년전처럼 오늘도 산야에 겨울눈이 하얗게 덮여 있다.

2005년 2월 10일 조선외무성은 돌연 세계를 향해 핵무기보유를 선언했다. 조선이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이미 제조했다는 것이다. 그 성명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이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 것이다. ... 우리는 이미 부쉬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고립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하였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우리의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자위적 핵억제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미국주도의 세력들이 조심스럽게 밟아가던 핵얼음판에 또다시  <돌>이 던져졌고 이 공식적인 천명은 최대의 파고를 그리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 돌 >이 역사에 끼친 영향이 대단히 컷다.


< 완화 >, 믿지 않았다



그때 미국은 조선에 긴장완화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조지 부시 제2기(2005년 2월 2일) 임기 첫연두국정연설이 그 대표적 실례이다. 국무장관 곤돌리자 라이스가 이미 조선에 대해 < 폭압정치의 전초기지 > 라고 발언했던 것을 부쉬는 반복하지 않았다. 부쉬는 국정연설에서 조선을 격분케 한 그 표현을 쓰지 않았다. 1월 20일 부시2기 취임사에서 ‘폭정의 종식’과 ‘자유의 확산’을 강조했던 것 과도 달랐다. 이것은 조선에 대한 미국의 완화신호와 같은 것이었다.

완화의 신호를 보낸 것은 미국만이 아니었다. 2004년 말 미국과 유럽 각국을 순방한 노무현대통령은 < 한국은 미국이 조선에 대해 강경정책을 실시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고 공개적으로 언명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납치피해자유골문제 때문에 여론들이 들끓었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를 발동하지 않겠다고 (부시가 친서에서 권고한 것에 따라) 동의 약속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측에게 신축성 있는 태도를 취할 것과 각측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줄곧 호소하였었다.

세계가 조선의 입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바로 이러한 시기에 조선이 6자회담 참가를 무기한 중단 한다는 것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선포함으로서 전혀 예상 밖의 승부수를 던졌다.

모두가 이것을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보았다. 그러나 세차례 진행된 6자회담 과정과 그즈음 벌어진 북미간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이것이 돌발적행동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그 당시 민족21은 " 1, 2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폐기'라는  북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며,  "3차 회담에 와서야 3개월 시한의 ‘다단계의 포괄적 비핵화안’을 제시했지만 그것도 회담 후 넉달을 넘기지 못하고 <북한인권법>을 채택하고 ‘망명정부설’을 유포하는  한편, 소형라디오 살포 등 대북 심리전을 강화하면서 북을 압박했다."고  논평하면서 "'붕괴론’을 대신한 ‘정권변형론’을 제시하는 한편, 주한미군은 휴전선 근방의 공중정찰 등을 통해 공공연히 무력 시위를 벌리고,  최근에는 미 행정부 고위관리가 북이 정제된 우라늄을 리비아에 수출한 증거가 있다며 또  한번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아갔다. 부시 2기 행정부의 연이은 강경발언도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미국의 본심을 의심케 하는 것이었다. “고 분석했다. 이 분석은 결국 북은 부시가 2월 2일 국정연설에서 보여준 다소 유화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북과의) 공존이나 대조선정책 전환’이라는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마련되지 못했다고 최종 결론을 내린것에 대한 당위성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전 주한미대사인 도날드 그레그는 <  내 생각에는 그들이 6자회담에서 정말로 의미있는 그 무엇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6자회담에 참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린 것이라고 본다. >고 하면서 실망을 표시했다.

부시 미국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조선핵보유반대에 합의했다. 고이즈미총리도 중의원예산위원회에서 조선이 6자회담에 돌아올 것을 요구했다.

조선이 진짜 핵을 보유하고 있는가 하는 의혹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자리잡으려 하고 있을 때 미국방부 국방정보국의 보도가 발표되었다. 조선이 12개에서 15개 정도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조선에 대해 압력 행사를 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

대표적 네오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조선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서 나쁜 본보기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북핵문제를 엄하게 다룰 것을 정부에 경고했다.

이 상황에서 다급해 진 것은  중국정부였다.

중국은 2003년에 시작된 북핵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주최국으로서 자칫하면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될 수 있었다.

바로 이때라고 생각한 주한미국대사는 < 중국은 나에게 여러차례에 걸쳐 조선사람들은 좀 다루기가 어렵다고 말해왔다. 중국이 시사한대로 대표단을 평양에 보낸다면 그들은 매우 어려운 회담을 가질 것으로 본다. 그러나 나는 중국이 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에 대해 커다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 회담을 통해 조선측이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듣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질 수 있다. > 라고 우회적으로 자극하였다.

작은 나라 조선이 던진 < 돌 >을 어떻게 받을지 몰라 이쪽저쪽에서 쩔쩔 매고 있을 때 왕자루이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평양으로 날아가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만났다. 그에게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 보낸 구두친서가 있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구두친서에서 6자회담으로 핵문제와 조선의 우려를 해결하는 것이 두나라의 근본 이익에 부합된다고 밝혔다.  중국정부가 왕자루이를 통해 핵보유불허용및 6자회담촉구카드를 내보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는 조선반도의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문제해결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여건이 조성되면 6자회담을 복귀하겠다고 대답했다. < 여건이 조성되면 >이라는 표현이 부글부글 끓고있는 핵여론가마를 서서히 누그러뜨려 주었다. 후일 사람들은 이를 절묘한 정치맛내기라고 표현했다.

7개월후 조선은 6자회담 테이블에 앉았다.

6자회담에 공손히 참가한 조선대표를 보면서 대국들은 다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으나 그들은 이미 북핵스트레스에 깊숙히 빠져들고 있었다. 조선은 그 어떤 경우에도 < 완화 > 라는 설을 믿지 않았으므로 ....



아시아의 독특한 핵보유국


그후 일들은 6자회담의 온기와는 다르게 전개 되었다.

2006년 10월 9일 조선이 핵시험성공을 발표한 것이다. 2005년 핵 보유를 선언한지 1년 8개월이 경과된 후였다. 진도 3.9에 폭발력 1kt라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북핵스트레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보려했던 미국은 불시에 고슴도치 가시에 찔려 놀라 벌떡 일어섰다. 세계지축이 지진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모든 통신, 방송들이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를 위협하는 중차대한 사건이라고 대서특필 했다. 조선이 핵을 보유하면 일본과 한국도 핵보유를 지향하게 된다는 도미노현상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조선의 이러한 행동이 핵전파방지체계 자체를 흔들리게 만들고 있다고 거세게 주장했다.

그러나 방사능 유출없이 지하핵시험을 성공한 조선은 핵무기 보유를 공식선언하면서 승리를 기뻐하는 열기로 전국이 뜨거웠다.

조선의 신문들은 2006년10대뉴스 제일 첫자리에 '핵시험 성공'을 놓았다.

조선의 핵시험성공으로 가장 위기의식을 가진  것은 미국이었다. 조선이 핵시험을 계속 진행하면 북의 힘에 대한 신뢰도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미국을 괴롭히는 또 다른 문제거리가 대두되었는데  조선의 핵문제를 국제화하는데 걸리는 난관이었다. 제재가 국제사회의 의사를 모아내는 면에서는 중요하지만 만능처방은 아니라는 새로운 견해가 백악관의 문을 두드렸다.  미국이 아무리 조선의 핵문제를 가지고 여론을 동원해도 지구의 아주  많은 나라들은 자기들이 북 핵위협을 직접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제 다른 묘수를 짜아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 핵 협조설 >이었다.

미국정부는 핵 전문가들을 내세워 조선이 이란이나 시리아, 파키스탄 등의 나라들과 핵밀매를 하고 있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그 여론이 미처 확산되지 못했는데 < 북핵협조설 >을 강하게 비난하는 발 빠른 조선 외무성대변인 성명들이 발표하였고 < 핵협조설 >을 여론화시키는 서방언론들을 규탄하는 목소리의 강도를 계속  높여 나갔다.  평양 2007년 9월 18일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조선외무성 대변인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일부 언론기관들이 조선과 수리아와 비밀리에 핵협조를 하고있다는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며 이것은 터무니없는 오도이며,  이미 2006년 10월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서 핵이전을 철저히 불허할 것이라는데 대하여 천명하였으며 변함없이 행동하고 있다고 강론했다. 동시에 대변인은 우리는 절대로 빈말을 하지 않으며 한다면 하고 안한다면 안한다.이번 <비밀핵협조>설은 6자회담과 조미관계의 전진을 달가와하지 않는 불순세력들이 또다시 꾸며낸 서툰 음모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몇개월 뒤 미국의 소리 방송에 따르면, 탐사보도 전문기자로 유명한 미국의 세이무어 허쉬 기자는 2008년 2월 11일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시리아 핵 협력설은 근거가 약하다고 말했다. 허쉬 기자는 자신이 만나본 미국 정부 인사 중 누구도 이스라엘 공군기가 지난해 9월 파괴한 시리아 내 건물이 북이 지원한 핵 시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허쉬 기자는 그러면서,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에 대한 최근의 보도는 이스라엘 측의 언론 공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세이무어 허쉬 기자는 자신이 만나본 미국 정부 인사 중 아무도 문제의 시설이 핵 시설이라고 말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북과 시리아 간 핵 협력의 실체가 분명치 않더라도 이 문제를 그냥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우겼다.

이런속에서 미국대통령 조지 부쉬가 김정일국방위원장한테 친서를 보냈다. 2001년 부시행정부 출범이래 처음있는 사변이 터진 것이었다. 조선중앙통신은 2007년 12월 6일자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조선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성 차관보가 5일 박의춘 외무상에게 전달하였다”고 보도했다. 이당시 한겨레신문은 "부시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친서를 보낸 건,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간 협의만으론 쟁점이 되고 있는 ‘핵신고’ 국면을 넘어 핵폐기 단계로 신속하게 진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면서 마침내 미국의 정보부문들로부터 이란이 이미2003년에 핵무기연구개발을 중지하였다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이것은 조선이 이란과 핵문제로 연결된 것이 없다는 확인인 동시에 조선의 <핵협조설>을 무산시키는 소리없는 메시지였다. 이야말로 조선에 대한 미국의 아량인지 굴복인지 알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관념을 깨뜨리는 정황은 관념을 무너뜨리는 정황으로 계속 확대되어 갔다.

조선핵문제에 관한 제5차, 제6차 6자회담이 진행되고 조선이 영변핵시설을 페쇄하고 국제원자력기구성원들이 필요한 감독과 검증을 진행하도록 하는데 동의했다는 보도가 날았다. 이어서 2007년 6월 26일에 조선은 유엔에 <핵프로그램신고서>를 제출하며 세계이목을 집중시켰다.

6자회담침체의 최대의 장애물이었던 핵프로그램신고서문제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미국과 중국은 안도의 숨을 쉬었고 한국언론은 '북핵 어물쩍 넘아가는가'라며 북의 핵보유가 기정사실로 인정되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였다.

속담에 걱정이 현실을 부른다는 말이 있다던가?

그 시기 조선을 다녀온 프리처드 전 미 북핵특사는 "미국은 핵무기를 보유한 북을 핵보육국으로 인정하는데에 더 익숙해져야 한다.”라고 한  조선전문가들의 주장을 천연스럽게 소개까지 했다. ‘미래한국’ 워싱턴특파원 이상민기자에 의하면 프리처드 전 특사는 5.29일 워싱턴포스트(WP)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4월 22일부터 26일까지 북을 방문해 김계관 북핵협상대표 등 북고위관리들을 만나서 들은 얘기를 아래와 같이 전했다. "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데 익숙해져야 하고 북핵폐기는 북미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된 후 논의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미국은 벌써 북핵보유국인정궤도에 진입한 셈이 되었다.

이런 흐름속에서 조선이 CNN등 미국 방송들이 중계하는 가운데 2008년 6월 27일 영변 5MW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세계에 보여 줬다. 후일 얼핏 보면 조선이 핵보유를 포기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고도의 외교행보였다고 정객들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한 사건이었다. 북핵폭탄계획(프로그램)의 상징물인 냉각탑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에 창문들이 떨리고 먼지도 일어났지만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핵을 보유하게 될지도 모를 세계판도위에서 그것은 한갖 폭음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이 영변핵복합체에 있던 냉각탑을 파괴한 이후 핵계획을 완전히 해체하고 얼마 되지 않는 핵무기들을 포기한다해도 조선은  여전히 핵능력을 갖춘 국가들로 구성된 또 다른 그룹에 속해있을 것이다.


신흥핵국가들이 실제로 등장할수 있는가?
북핵문제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은 이것을 생각하였다.

세계에 핵보유국으로 인정된 나라들 말고도 핵폭탄을 제조할수 있는 과학자들과 기사들, 하부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40여개에 달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무기선택안을 진지하게 연구하다가 멈춘 스웨덴과 스위스로부터 1991년의 걸프전에 핵폭탄제조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핵후퇴국가는 10여개이다.

이 나라들이 핵에서 실지로 완전후퇴한 것인가?

문제를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조선과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에 있는 한국은 비밀핵무기계획을 추진시키다가 지난 1970년대에 미국의 압력으로 포기했다. 미국의 핵전문가인 허즈맨은 핵공업국인 한국이 자기의 위협을 느끼는 경우 신속하게 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었다.

원자탄의 피해를 입은 유일한 나라인 일본은 핵폭탄제조가 금지사항으로 되어 있지만 역시 일본에도 일류급핵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상태이다.

아시아의 다른 핵 개발후퇴국인 대만은 미중 관계 완화를 지켜보면서 1970년대에 비밀무기계획에 착수했다. 미국의 압력으로 대만이 중지하기는 하였지만 핵을 보유한 중국과의 긴장상태가 고조될 경우 그 계획을 신속히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란이 우라늄농축활동에서 매년 성과가 진전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사우디 아라비아와 페르샤만에 있는 테헤란의 적수들도 프랑스와 미국의 협조하에 핵동계획에 착수 했다. 걸프만 6개아랍국의 기구인 걸프협력이사회((The Cooperation Council for the Arab States of the Gulf / Gulf Cooperation Council; GCC)는 자체의 지역적인 우라늄농축계획을 내놓았다.

이짚트에서도 첫 원자력발전소건설계획이 발표되었다. 범아랍민족주의를 일으킨 가말 압델 나세르대통령이 핵무기구상을 탐구하다가 멈춘 후 40년의 세월이 흘러 발표된 이 계획은 이짚트도 그간 잠자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했다.

이상과 같이 모든 나라들은 핵개발후퇴국으로 자처하는 브라질처럼 핵 확산 금지 조약(核擴散禁止條約,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약칭 NPT 또는 NNPT, 문화어: 핵무기 전파 방지 조약)의 핵폭탄금지조항을 이행하면서도 필요한 경우 무기화에로 급속히 이행할수 있는 핵동력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핵대국이나 핵신흥국가나 위험신호에 대한 대응은 똑같을 수 밖에 없다.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아무런 제한없이 내놓고 핵을 만드는 국가나 숨겨놓고 만드는 국가, 도전을 물리치며 힘들게 핵을 만드는 국가가 다  결과적으로는 자기 이익을 위한 것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핵보유국을 인정해 주고말고 하는 것은 사실상 의의가 없는 일이다.

조선사람들은 처음부터 이 원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을 정정당당하게 하고싶어했다. 이 정정당당한 대응을 위하여 조선은 정세관리를 매우 치밀하게 계획하고 계획적으로 진행할 뿐이었다.

2008년  7월 10일 북핵6자회담이 또다시 열렸다.

우여곡절끝에 열리는 회담이었음에도 사람들은 별로 개운치 않아 했다. 그동안 조미간의 핵협상 달리기를 관찰해 볼때 미국은 눈에 보이는 외교적성과를 얻기에 급급하여 조선에 끌려다니는듯한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조선의 핵신고서에서 제외하도록 한 우라늄농축프로그램과 핵확산문제를 보면 당연히 검증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 빠진 것과 같았다. 미국은 조선의 완강한 고집에 밀려 그 두 사안을 신고서와는 별도로 양해각서에 담는 형식을 취해 줌으로써 철저하고 완전한 신고였어야 한다는 당초의 원칙에서 후퇴했고 조선에 양보한 것이다.

핵폐기론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들은 누구나 핵신고서에서 빠진 핵무기폐기에 관한 내용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보고있었지만 6자회담국들은 이에 눈을 감고 있는 듯 하였다. 6자회담참가국들이 외관상 조선의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형식에 불과했다. 조선은 이런 틈을 타서 플루토튬을 이용한 추가핵무기 제조는 대가를 받고 포기할지언정 기존핵무기로 핵보유국지위를 얻겠다는 욕심을 꾸준히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2009년을 맞이한 조선에서는 <변이 나는 해>라는 색다른 표현이 나타났다. 그 ‘변'에 대하여 조선사람들은 비날론이나 주체철,  CNC기술과 같은 기술및 경제문제들로 꼽고있었지만, 속으로는 따로 세워놓은 것이  있었다. 그들이 맞이한 진짜 '변'은 핵문제에서의 ‘변'이었다.

그런데 미국 자신이 직접 물을 대 주었다.

미국방성은 2008년 연례보고서를 통해 북을 처음으로 핵보유국에 포함시켰다. 이 보고서는 아시아대륙연안에는 이미 5개의 핵보유국이 있다면서 중국과 인디아, 파키스탄, 조선, 러시아를 영문순서에 따라 명기했다.

지금까지의 미국정부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건이었다.

미국정부는 지난 2006년 10월 조선이 핵시험을 실시했지만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나아가 핵무기보유국임을 자처하며 북핵6자회담을 군축회담으로 바꿔야 한다는 조선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정부는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명기한 보고서내용이 실수한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조선이 어떤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것이라는 미당국의 인식이 반영됐다는 점에 여론은 일치되었다.

미국의 실수만이 아니었다.

앞선 8월 19일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대통령은 워싱톤특파원간담회에서 현실적으로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가 곧바로 발언을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쿠키뉴스 이동훈 특파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독자적 정보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이라며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40여분간의 간담회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개인생각이라며 발언을 정정했다.간담회 후 이 대변인은 "대통령께서 '핵보유국' 말씀한 것은 아닌 걸로 정리해달라"고 주문했다.)

조선의 대중보도수단들은 < 미국이 처음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핵무기보유국으로 인정하였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보고서가 나간 뒤 미국방부는 <전적으로 실수였다>며 한발 물러났고, 국방부 대변인은 < 정책적으로 우리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동맹국들에 사과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미 국방부산하 합동군사령부보고서와 로버트 게이츠국방장관의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국제문제전문지)지 기고문에 이어 미국국가정보위원회(NIC)보고서도 조선을 <핵무기보유국>으로 표기했음이 뒤늦게 또 밝혀졌던 것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잡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조선은 핵무기 1~2개를 만들수 있는 플루토늄을 가진 국가로부터 8개의 핵무기를 만들수 있는 플루토늄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고 밝히면서 <조선은 2006년에 핵폭탄 1개를 시험함으로써 핵보유국이 됐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폭스TV(FOX)방송은 "세계의  첩보기관들과 군사전문가들이 조선을 완전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있다. 그들이 조선이 핵무기개발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이미 완전한 핵보유국으로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인식을 바꾸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평하였다.

타이신문 <아시아 뉴스 네트워크>는 <새로운 핵무기보유국>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지역의 미군기지들을 잿더미로 만들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조선의 핵무기보유국지위는 남북관계와 지역의 정치정세를 급변시켰다고 주장했다.

영국신문 <더 타임스>는 <조선, 완전한 핵무기보유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면서 국제적으로 조선을 완전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날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쯤되면서 < 미국의 동맹국들로서는 미국이 비공식적으로 핵보유국 북과 공존하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한다.>는 <워싱톤 포스트>의 지적이 충분한 타당성을 보여준 것이 되었다.

조선사람들은 만인의 인정을 받는 것을 양민보증이라고 말하는데 이 사건들을 핵문제에서 세계의 양민보증을 받은 것으로 여긴다.

미국도 역시 순간순간마다 상황대처에서 북의 핵보유를 인정하였지만 그것은 진실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역사에 매김이 되었다.


도전속 핵강행군


2009년 따뜻한 봄날.

온갖 꽃이 만발한 화창한 봄, 조선이 차례로 인공지구위성발사와 지하핵시험을 단행하여 성공 시켰다.  곧이어 녹색 무르익은 여름날에는 미사일발사시험을 무더기로 진행했다. 정신차릴 틈도 없이 벌어진 이 사건들이 세계각국을 놀라게 했다.

북제재를 추동하는 안보리사회 제1874호 결의가 채택되자 김일성광장에서 10만명이 운집했다. 이 집회에서 평양은 < 우리는 익측(좌우의 측면)이 있건없건 국제적지원이 있건없건 자기가 선택한 길로 보무당당히 나아갈 것 >이라고 단호히 선언했다.

<환구시보> 7월 28일자 신문에는 <조선핵문제가 잊혀지겠는가>라는 제목의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 교수 장련괴(張蓮瓌)의 아래와 같은 글을 실었다.

"올해 들어 조선은 세가지 일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첫번째 핵계획과 미사일계획을 대대적으로 추진시키면서 <선군정치>를 극단으로 내밀었다. 1월 조선은 한국과 <전면대결상태>에 들어간다고 선포하고 대결을 중지할 것에 대한 한국과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반도정세가 급격히 긴장되는 상황에서 조선은 4월 5일 <위성발사>를,  5월 25일 제2차 핵시험을 단행하고 7월에는 미사일발사시험을 집중적으로 진행하였다. 이로서 조선의 핵계획과 미사일계획은 새로운 차원의 수준으로 진입하였다.

두번째는 핵을 영원히 포기하지 않으며 6자회담에서 영원히 탈퇴한다고 선포했다.

조선외무성의 강석주1부상은 일찌기 2006년 11월 조선이 핵무기를 연구제작하는 것은 그것을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발언한 바 있었다.

4 월 14일 조선외무성은 안보이사회가 조선의 발사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발표하였다는 것을 이유로 들면서 조선은 영원히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6자회담합의의 어떤 구속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잇달아 7월 15일에는 6자회담은 이미 종말을 고했다고 선포했다.

세번째는 조선이 5월부터 갑자기 <150일전투>에 대해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사업중심을 경제건설로 돌린듯 한 것이다.  조선은 2006년 10월에 제1차 핵시험을 진행하고 당당한 핵보유국으로 되었다고 선포하였으며 2007년말에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연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 세가지 일은 독립적인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하나의 큰전략의 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은 20세기 50년대 후반기부터 핵기술개발에 착수하여 오늘까지 근 50년동안 핵계획을 형성시켰다. 이 기간 조선은 국제사회의 엄한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경제건설을 희생시킬지언정 핵무기를 연구제작하여 핵보유국으로 되기 위해 많은 인력과 물적자원, 재력을 투입하였다. 그 목적은 통일에서 주도권을 쥐고 주변대국들과의 외교에서 일종의 전략수단을 늘이는데 있다. 때문에 핵무기보유는 조선의 기정된 정책이며 포기와 <몰수>가 허용될 수 없다.

20세기 90년대에 조선핵문제가 두드러지게 부각된 후부터 조선은 여러가지 외교수단을 통해 유관국들과 에누리를 하면서 핵계획을 안정적으로 추진시킬 수 있는 시간을 쟁취하였으며 2006년 10월에 끝내 제1차 핵시험을 진행하였던 것이다.

조선은 올해에 제2차 핵시험을 진행하였으며 운반수단을 전면적으로 개진하고 시험발사하였다. 조선의 이러한 거동은 국제사회의 강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이미 두차례의 핵시험을 진행하고 미사일기술을 충분히 발전시킨 조선은 더 이상 핵계획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국제사회와 에누리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지금 조선의 외교목표는 국제사회가 <핵포기> 환상을 버리고 조선이 핵을 보유하고있는 기정사실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조선은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영원히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여 의연히 조선반도비핵화수호를 견지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이미 철저히 실패하였다는 것을 명백히 알려주었으며 조선핵문제와 관련한 모든 회담을 거부하고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림으로써 조선핵문제를 논의할 여지가 없는 지나간 문제로 만들고 국제사회로 하여금 조선핵문제에서 실패하였다는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하였다.

급격히 변화되고있는 정세는 필연코 중국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안목과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조선핵문제를 대하도록 할 것이라는 중국언론의 논조들은 조선에 대한 중국의 태도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토록 선린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조선이 핵을 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조선은 대국의 개념에 땅이나 인구수를 꼽지 않는다.

조선은 대국의 가치에서 첫째로 국방력으로 꼽는다.

이것은 국방력이 약한 탓에 열강들의 희생물로 되었던 과거역사가 준 가치관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교훈은 중국사람들에게도 있다.

하기에 중화인민공화국은 1964년에 첫 핵무기시험을 진행하였다. 중국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의해 공인된 핵보유국들인 5개 유엔안보리사회 상임이사국들 가운데 핵수단을 포함한 자기의 무력에 대한 그 어떤 공식정보도 제출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이다.

그에 대해 비밀을 지키는 공식적인 이유가 있다. 즉 중국에는 핵무기가 적고 다른 핵대국들의 핵수단들과 기술적으로 대비가 안되기 때문에 핵억제력유지를 위해 전략핵무력에 대한 불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또한 전제조건없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의무화한 유일한 대국이다. 이것은 평화시기에 중국의 핵탄두들이 미사일과 분리되여 보관되고 있다는 설명으로 뒷받침 되고 있다. 중국은 핵타격을 받는 경우 2주일안으로 핵탄두들을 운반수단에 장착하여 침략자에게 보복타격을 가한다고 설명한다.

중국의 핵무기고에 180~240개의 핵탄두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 혹은 프랑스 다음가는 핵대국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이 자기의 경제기술적잠재력을 이용하여 각종 미사일과 핵무기를 급속히 증강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할바 없다."


  핵잠재력에 대해 제일 많이 공개한 것은 영국이다.

영국은 1952년에 처음으로 핵무기를 시험하였으며 현재는 100kt 혹은 그보다 작은 위력을 가진 열핵전투장약들을 보유하고있다. 영국의 전략무력은 미국으로부터 구입한 48기의 잠수함탄도미사일 <트라이던트-2 (Trident II)>를 탑재한 4척의 <뱅가드 (Vanguard)>급 잠수함과 자국에서 제조한 114개의 핵탄두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은 2000년대에 들어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탑재할 신형원자력잠수함의 설계에 착수하고 미국의 개량형 <트라이던트-2 (Trident II)> 미사일구입을 계획하며 뱅가드급 잠수함들의 수명이 끝나는 2024년이후에 배비할 새로운 형의 핵탄두를 개발할 것에 대한 결정을 채택했다.

런던은 영국핵무력의 전투준비상태는 낮은 수준에 있으며 최고지도부의 명령에 따라 핵무력을 전투에 진입시키는데 오랜 시간(1주일)이 요구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왜 그런 발표를 하였을까 하는것이 의문을 남기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기의 핵잠재력에 관한 공식자료를 밝히지 않고 있는 또 하나의 유다른 핵보유국이다. 이스라엘은 1960년대말에 핵무기를 만들었다.  실물시험을 진행한적은 없으나, 국내핵물리학자들과 그들에게 협조해 준 외국학자들의 높은 과학기술수준을 통해 이스라엘핵무기의 전투능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일본에 기지를 두고 있는 군함과 군함에 탑재된 핵수단들에 대해서도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전략을 쓰고 있지만 세계의 그 어느 정부기관이나 개별적인 전문가들도 이스라엘에 핵무기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있다.

인디아는 핵무기전파방지조약 제9조에 따라 핵보유국이라는 법률적지위를 못가진 핵무기보유국들의 부류에 속한다. 뉴델리는 자기의 핵무력과 핵계획에 관한 공식자료를 제출하지 않고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인디아가 무기급플루토니움으로 제조한 15~200kt의 위력을 가진 핵탄두를 60~70개정도 보유하고있다고 평가하고있다.

1974년에 처음으로 핵폭발장치시험(평화적목적의 시험이었다고 발표)을 진행한 인디아는 1998년에 핵무기를 공개적으로 시험하였으며 자기의 핵무력이 중국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선포하였다.

파키스탄은 1998년에 인디아와 거의 동시에 첫 핵무기시험을 진행하였다. 공식적인 목적은 인디아를 억제하려는데 있다. 파키스탄의 핵무기고에 농축우라늄으로 제조한 50kt까지의 위력을 가진 전투장약 60여개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제법적 견지에서 볼 때 5개 대국들은 핵무기전파방지조약 제9조에 따라 법률적으로 공인된 핵무기보유국들이다. 나머지 3개 나라(인디아,파키스탄,이스라엘)는 정치적으로는 핵국가로 인정받지만 법률적측면에서는 핵보유국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이 나라들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가입한적이없고 상기 조항에 따라 핵보유국자격으로 조약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문제성있는 핵보유국으로 주시되는 나라는 조선이다.

그렇다면 핵대국에로 가려는 조선의 핵기술은 어느 정도인가.
2010년이 저물어가던 어느 아침 뉴욕타임스에 <조선,  거대한 새 핵시설 공개> 라는 제목으로 글이 실렸다.

< 조선이 비밀리에 그리고 신속하게 건설한 우라늄농축시설을 이달 (11월)초 자국을 방문한 미국핵과학자에게 공개하였다. 이것은 오바마행정부에 대한 도전으로서 조선이 자기의 핵무기고를 확대하거나 보다 위력한 원자탄을 제조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로스 앨라모스국립연구소의 이전 소장이며 현재 스탠포드종합대학의 교수인 핵과학자 헥커는 한 인터뷰에서 새로운 핵시설이 정교하게 꾸려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면서 이전에 낡아서 쓸모없게된 연료생산센터가 자리하고 있던 건물이 최근에 다시 꾸려지고 그곳에 설치된 수백기의 원심분리기들이 초현대적인 조종실을 통하여 돌아가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말하였다. 조선은 이미 2,000기의 원심분리기가 설치되어 가동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관리들은 미국인들과 국제사찰관들이 이 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추방된 2009년 4월에는 그러한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고있다. 이 시설이 이처럼 빨리 건설되었다는 사실은 2006년에 첫 핵장치를 시험한 고립되고 가난한 조선이 외부로부터 방조를 받았으며 이 나라가 국제적통제를 배격한 것을 처벌하기 위해 취해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새로운 엄격한 제재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해준다.

헥커를 포함한 미국전문가대표단은 조선이 국제공동체와 한 합의의 일환으로 해체하였던 한 시설의 부지에 경수로를 건설함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진전을 이룩하였다는 증거를 위성사진으로 확인했다고 이미 밝혔다.

헥커는 조선을 떠날 때 우라늄농축작업을 목격한 놀라운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며칠전에 백악관에 이에 대해 따로 통보하였다.

백악관은 분명 이 새로운 정보를 조선이 과거의 행동에 따른 국제적 제재속에서도 유엔결의들과 어긋나게 핵계획을 계속 추진하면서 커다란 진전을 이룩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써먹으려 할 것이다.

조선은 2006년에 첫 핵시험을 진행하고 오바마대통령의 취임직후에 두번째 핵시험을 한 조건에서 이제는 사실상 핵보유국이나 다름없다. 조선에 가해진 제재조치들은 이 나라의 핵활동능력을 어느 정도 약화시켰지만 평양으로 하여금 핵야심을 포기하도록 만들지는 못하였다. >

이것이 사실이라면 조선이 준비하고있는 핵위력은 대단한것이다.

조선이 오래동안 매만져 온 < 화성 >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면 한국의 전영토와 중국의 인접지역들, 러시아의 연해변경을 타격할 수 있다. <로동> 중거리미사일은 일본과 중국의 중부지역, 러시아의 시베리아까지 날아갈 수 있다. 그리고 <대포동> 대륙간탄도미사일개발이 성과적으로 끝나는 경우에는 알라스카와 하와이, 미국본토의 서해안, 아시아의 모든 지역들, 러시아의 유럽부분 지어는 중앙유럽과 서유럽까지 타격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은 <인정받지 못한> 핵지위를 가진 국가라는 범주에 속하는 특별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기술발전의 길로 계속 치솟아 오르고 있다.  외교와 경제원조라는 <당근>도, 고립과 외교적타격이라는 위협도 핵무기를 확고히 보유하기 위한 길로 나가고있는 평양을 돌려 세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우수한 선택

우리민족은 옛부터 3이란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두어 왔다. 
조선에 3대 성취라는 말이 있는 데 모든 일은 3대를 이어가 완성된다는 뜻이다. 1세대를 30년쯤으로 하여 3대면 100년이라 본다.

지금
대국들은 선 의 혁명계승 3대를 김정은제1위원장이 이어 가고 있는 것을 주시하면서  그가 세계와의 관계에서 온화한 태도를 취해줄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12월의 눈속에서 처음으로 세계에 선 보인 김정은제1위원장은 자신의 정치의지를 칼날처럼 표현했다. '선군계승의지의 선언'이다.

2012년 12월 12일 정권에 오른 김제1위원장은 실패했던 위성발사를 다시 단행하여 성공 시키고, 다음해 2월 12일 직접 발사명령을 내리면서 제3차지하핵시험을 성공에로 이끌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2013년 5월 초에는, 당중앙전원회의를 열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키는 전략적노선이라는 메시지로 대국들의 심장을 아주 서늘케 했다.

집권문턱에서 이루어놓은 3단계의 위성발사와 4단계의 지하핵시험성공, 병진노선발표, 이 3대사변으로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튼튼히 다지는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6 자회담을 모처럼 마련하려는 인방의 눈치를 조금치도 고려하지 않고 조중역사를 새롭게 써내가려는 젊은 지도자의 결단앞에서 사회주의 이후 오랜 혈맹이며 형제국 관계라고 말했던 중국도 조선의 젊은 지도자를 대국적감정으로 쥐어 보려고 했다.

자위적핵무력건설의 새로운 단계를 구상한 김정은제1위원장은 그 어떤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강세적 자세를 취했다.

최고사령관의 조직지휘하에 열흘이 멀다하며 진행된 미사일발사와 비행훈련, 탱크기동훈련과 항공육전대의 투하훈련과 같은 군사훈련들은 조선의 국방력 및 군사적수준을 계속 상승시키며 비약하게 했다.

중국은 자유기고가의 글들로 김정은제1위원장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면서 조선이 핵문제에서 자제하지 않으면 중국이 더는 조선을 묵인할 수 없다는 논조를 보였다. 중국의 새세대들이 과거의 역사를 신중히 대하지 못한 것이었다.

1964 년 10월 16일 중국이 핵시험에 첫 성공을 발표하였다. 조선인들은 이 날자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중국의 핵시험성공에 대하여 미국은 강하게 도전했다. ( 이에 대해 이병진교수는 자주민보에 1965년 미국이 시도한 ‘모자작전, Operation Hat'을 자세히 밝혔다.)   구 소련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의 핵시험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 당시 김일성주석은 중국의 핵시험성공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낸 제일 첫 국가 수반이었다. 그때  모택동과 주은래와 같은 원로 정치인들은 조선의 고무를 영원히 잊지 못할 우의로 간직하였다.

그런데 반세기 이후 조선의 핵시험 성공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조선의 것과 달랐다.

반복적 역사인데 같지 않은 결과가 도출 되었다는 것을 조선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중국 일부 언론인들의 역사적 상식을 벗어난 행동에 대하여 로동신문 편집국은 날카롭게 비판하였고, 이에 대하여 중국언론사측에서는 젊은 필자들이 역사를 잘 알지 못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사죄의사를 표시했다.

얼음밑에서 짠물이 흐르건 단물이 흐르건 북핵역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북핵 노정도가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지구상에 핵무기가 생겨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이다. 그후 반세기동안에만도 100여차례의 전쟁이 있었다. 이 전쟁은 대체로 미국의 주도하에 벌어진 것들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통하여 사람들은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눈을 뜬 나라들이 다름아닌 핵무기보유국들이었다.

한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의 희생물이 된 발칸반도나 중동지역 나라들을 보면 과거 대국을 믿고 국방력강화에 힘을 넣지 않았거나 미국의 압력과 회유에 못이겨 이미 있던 전쟁억지력을 포기한 나라들이었다. 결국 이 나라들은 행복과 번영은 커녕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마저 지켜내지 못했다.

조선사람들은 핵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침략세력과는 오직 핵으로 맞서 싸워야만 자기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제일 먼저 깨닫고 행동에 옮긴 선각자들이라고 기록될 만하다.

지구상에 핵무기 출현 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핵 대 핵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핵전쟁의 파괴력, 살상력 때문이다.

1945년 7월 16일 뉴맥시코주 알라모고르도 시험장의 이야기는 핵역사의 발단을 생동력 있게 보여준다.
미국이 처음으로 원자탄을 만들어 낸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도 시험장은 인적없는 사막에 위치해 있었다.
유럽에서 도망쳐 온 과학자들이 그 사막의 목장건물에 시험장을 정하고 있었다.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철탑에는 원자폭탄이 설치되어 있었다.

< 10, 9, 8, 7, 6, 5, 4, 3, 2, 1, 0 >

카운트다운하는 물리학자가 부르는 마지막 숫자와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원자탄폭발(원폭)시험이 성공한것이다.

그날 원자폭탄시험의 책임자는 물리학자 존 로버트 오펜하이머였다.
전날까지 문학을 사랑하는 평화애호가로 알려져 있었던 오펜하이머는  원자탄이 폭발하는 그 순간부터 인류역사상 가장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무기를 만들어낸 인류 불행의 화신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미국이 만들어 낸 첫원자탄은 히로시마에서 그 <위력>을 과시했다.

핵구름이 버섯처럼 피어나는 순간 도시는 불도가니로 변하였다. 세계는 미국이 고의적으로 감행한 원자탄투하를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특 대형범죄행위로 낙인 찍었다. 미국대통령 루즈벨트의 보좌관이었던 윌리암 레기까지도 <원자탄을 처음으로 사용한 우리는 중세기 야만인들의 도덕수준에 이르렀다.>고 실토했다.

지금 미국은 히로시마나 나가사끼에 투하한 핵탄에 비할바 없이 폭발력이 강한 핵무기들을 수천개나 가지고있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유럽을 원래대로 복구하는데 30~50년이 필요했다면 세번째 대전이나 세계 열핵 (熱核, thermonuclear)전쟁이 발발하는 경우에는 세계가 100년 아니면 200년간의 원시상태를 겪고서야 회복의 궤도를 타기 시작할 것이다.

정의와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에 대한 옳바른 견해를 가지고  정치와 자국의 이해관계를 떠나 인류앞에 정당하고 타당한 의견을 내놓고있다.

조선의 핵문제를 편견적인 시선으로 대하려던 중국의 강경파들 속에서도 논란이 벌어지게 되었다. 핵문제 때문에 조선이라는 65년간의 동반자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논거들이 퍼지기 시작했고 조선의 핵보유는 자국의 안정에 필요할뿐 아니라 중국의 안정을 위해 보다 필수적인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러시아의 신문들에도 서방이 말하는 조선의 핵시설협조론을 부정하며 쓴 다음과 같은 글들이 발표되었다.

< 명백한것은 북이 자체의 힘으로 거의 모든 것을 달성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이 조선 운반로케트 <은하-3>의 잔해들을 연구한 결과가 보여준 것 처럼 모든 주요부분품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제작되었으며 혹시 수입한 것이 있다면 그 어떤 제재에도 걸리지 않는 소소한 부분품들이다. >,

< 또 한가지 사실을 지적하여야 할 사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인민들이 굶어 죽고있기 때문에 폭탄과 미사일을 만드는 데 돈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에 돈을 써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에는 전반적인 정세에 대한 이해가 결핍되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지역의 많은 주요대국들사이의 관계가 첨예한 조건에서 평양은 부득이 군사강국의 본보기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

그들의 논리를 보다 구체화해 보자.

원자탄과 미사일개발은 그 어떤 < 스텔스비행기 >나 놀랄만 한 정밀도를 가진 순항미사일, <지능탄약>과 기타 고도기술무기에 비해 훨씬 적은 비용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조선으로서는 한번 힘을 모아 핵폭탄을 만들어 믿을만 하게 시험하고 그것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다음  잠재적인 적수들의 기를 꺾어놓는 < 비대칭적인 대응 >의 길을 택하는 것이 실리적일 것이다.

미싸일 및 핵야심을 완강하게 고수하면서 이 무기들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동의 논리는 바로 이것으로 설명된다.

핵보유국의 길을 강행군해 온 김정일위원장을 계승하여 핵무력이라는 새로운 표현으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김정은제1위원장의 구상은 점차 세계의 인정을 받아냈다.

조선사람들은 미국의 핵선제공격대상의 첫번째 목표는 바로 자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생각은 <로동신문>을 통하여 종종 밝혀지고 있다.

< 조성된 험악한 정세와 역사적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미국의 침략을 물리칠 강력한 전쟁억제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였다. 우리의 상대는 세계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이다. 반세기이상이나 미국의 핵위협속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가장 믿음직한 전쟁억제력은 핵무기였다.  미국이 핵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고있는 조건에서 외교적방법이나 호소로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 사회주의제도를 고수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핵보유를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속에서 자기의 최고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선택이라고 보는 조선사람들의 견해를 누가  옳지 않다고 하겠는가. 자위권행사라고 주장하며 핵무기 위력이 강할수록 침략을 억제하는 힘은 크다고 보는 그들의 견해를 부정해볼 틈이 이제는 없어졌다.

평양은 미국이나 다른 세력들이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나 <완화>의 분위기를 어떤 경우에도 믿지 않는다. 조선은 자기의 핵지위로서 대국들의 각축전의 희생물이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한다. 조선의 새세대들은 이미 지나온 수백년전의 역사에서 이 나라들의 선조들이 쓰라린 아픔을 당한 것을 잊지 않고 있으며 그들이 남긴 교훈과 당부를 충분히 존중하고있다.

조선이 핵무력강화의 길로 가는 것이 결국 옳았다는 것을 보다 생동하게 증명해 주는  것은 미국의 새로운 핵구상이다.

미국은 2015년 새해를 맞으면서 앞으로 300억US$를 들여 핵무기관리체계를 전면개조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방장관 헤이글은 핵무기운용체계가 낡고 관리상태에 여러가지 헛점이 나타났다고 하면서 앞으로 5년간 100억US$를 투입하여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국방성은 특히 핵, 미사일부대의 사기를 북돋우려고 미공군국제타격사령부(United States Air Force Global Strike Command) 사령관의 급수를 4성장군으로 승격시키고 인원도 대폭 늘이기로 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오래전에 발표한 <핵무기없는 세계> 구상과는 정반대의 행동이다. 결국 오바마의 <핵무기없는 세계> 건설구상은 결국 세계를 기만하기 위한  미사려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당대통령후보로 나오면서부터 <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이 핵무기없는 세계를 추구한다고 말할 것> 이라고 < 공약 > 한 오바마는 집권 후 외국행각의 길에서 < 핵무기없는 세계 > 건설구상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집권초기 그는 앞으로 임기중에 비록 < 핵무기없는 세계 > 구상이 실현을 보기 어렵다고 해도 끝까지 노력하겠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자기의 외교정책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나라들이 여기에 귀를 솔깃했으나 조선만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2014년말 러시아의 한 신문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 오늘날 국제무대의 힘의 균형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선의 핵보유'는 단호하고 용감하며 슬기로운 조선인민에 대한 존경으로 부상하고 있다. 조선의 핵보유야말로 소련이 해체된 이후 나토와 야합하여 전횡을 다 부리는 미국을 길들이는 공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핵대국의 출현은 세계평화와 안전, 안정을 더욱 강화해 주고 있다. 진보적인 세계는 강의하고 근면한 조선인민의 손에 핵무기가 쥐여져 있는 한 세계평화가 보장 된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이 핵무기가 언제나 선량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남의 나라에 대한 침략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혈안이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들을 억제하는데 전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핵문제를 주시해온 한 역사학자는 <핵억제력을 갖추지 않았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얼마든지 새 전쟁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조선은 막강한 억제력을 보유하고있다. 조선의 억제력을 가리켜 평화의 믿음직한 담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사실에 비추어볼때 핵보유국이 된 조선이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보장에 기여한 역사적의의는 그 무엇으로서도 부정 할 수 없다.

조선이 핵보유국이라는것을 선포한 2005년 2월 10일부터 오늘까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래 10년을 생각해 보면 어떤 모습일까.

조선사람들은 코리아반도를 둘로 갈라놓은 것도 미국이며 조선에 전쟁의 참화를 입힌것도 미국이라는 것을 언제나 강조하고있다. 그들은 수십년간의 전쟁연습소동으로 조선사람들을 편안히 살 수 없게 만든 것도 미국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그 규탄의 도수는 대를 이어 고조되는 상태이다.

얼마전 조선인민군 고위장령이며 조선로동당 고위인물인 전병호가 88살을 일기로 서거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미사일발사를 시찰한 직후 바로 전병호의 영구를 찾은 김정은제1위원장은 그가 인민군대를 현대적인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갖춘 최정예혁명강군으로, 조국을 인공지구위성제작 및 발사국, 핵보유국으로 전변시키는데 특출한 공헌을 하였다고 높이 평가하였으며 그의 유가족을 고무했다.

조선이 핵보유국으로 되는것이 옳은가 아닌가 하는 것은 결국 무엇보다 조선사람들 자신이 평가해야 할 일이다. 한 나라를 핵보유국으로 이끌고가는 지도자의 결심이 옳은가 아닌가 하는 것 또한 그 국민들이 평가하는 것이 먼저이다.

미국도 이제는 조선과 그 영도자의 생각을 충분히 알때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지난 수십년간 조선의 지도자들의 생각을 모르는척 해 왔다. 그리고 왜 국민이 자신들의 지도자들을 지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외면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이제 더 그 전술을 반복해서는 안될 때가 되었다.

미국은 보다 큰것을 보아야 한다. 미국이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이에 기초하여 편안하게 공존할 때, 세계에 안정과 평화가 깃들고 인류는 행복과 발전과 공영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북핵문제'를 주시하고 관심하는 모든 국가들 모두 같은 깨달음에 있을 것이다. (끝)



그때 발표되었던 북 외무성 성명의 전문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성명

우리 공화국을 적대시하고 기어이 고립압살해 보려는 2기 부쉬행정부의 기도가 완전히 명백해졌다.

수차 언명해온바와 같이 우리는 미국에 《제도전복》을 노리는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조미평화공존에로 정책전환을 할데 대한 정당한 요구를 제기하고 그렇게만된다면 핵문제도 다 해결할수 있다는 립장을 표명한데 따라 2기 부쉬정권의 정책정립과정을 인내성을 가지고 예리하게 지켜보았다.

그러나 2기 부쉬행정부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끝내 외면하고 대통령취임연설과 년두교서,국무장관의 국회인준청문회발언 등을 통해 우리와는 절대 공존하지 않겠다는것을 정책화하였다.

미국의 공식적인 정책립장을 밝힌 미행정부 고위인물들의 발언들을 보면 그 어디에서도 우리와의 공존이나 대조선정책전환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도 찾아볼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폭압정치의 종식》을 최종목표로 선포하고 우리 나라도 《폭압정치의 전초기지》로 규정하였으며 필요하면 무력사용도 배제하지 않을것이라고 공공연히 폭언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미국식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을 통해 세계를 오직 미국식가치관을 따르는 한 모양새로 만들어 놓겠다고 다짐하였다.

결국 2기 부쉬행정부의 본심은 1기때의 대조선고립압살정책을 그대로 답습할뿐더러 보다 강화하겠다는것이다.

미국은 이처럼 우리의 《제도전복》을 목표로 한 새로운 리념대결을 선포하고도다른 한편으로는 핵문제의 《평화적이며 외교적인 해결책》과 《6자회담의 재개》에대해 념불처럼 외우면서 세계여론을 기만하려 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강도적인 억지론리이며 모략과 기만의 명수로서의 미국의 기질과 뻔뻔스러운 량면적립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단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이 우리 제도에 대해 시비질하지 않고 우리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반미를 하지 않고 우방으로 지낼것이라는 립장을 명백히 밝히고 핵문제의 해결과 조미관계 개선을 위해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미국은 이것을 우리의 약점으로 오판하면서 우리 인민이 선택한 존엄높은 우리 제도에 대해 모독하고 무서운 내정간섭행위를 감행하였다.

미국이 핵문제해결의 근본장애인 적대시정책을 철회하라는 우리의 요구를 외면하고 우리를 적대시하다 못해 《폭압정권》이라고 하면서 전면부정해 나선 조건에서미국과 회담할 명분조차 사라졌으므로 우리는 더는 6자회담에 참가할수 없게 되였다.

회담상대를 부정하면서 회담에 나오라는 말이 모순적이고 리치에 맞지 않는다는것은 너무도 명백하지 않는가.회담상대를 무시해도 분수가 있는 법이다.

미국은 지금 어리석게도 인민에 의해 선출된 우리 정부를 부정하고 인민의 편에있다고 하는데 회담을 정 하고 싶다면 미국이 좋아한다고 하는 농민시장 장사군들이나 미국이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 《탈북자조직》대표들과나 하라는것이다.

일본도 미국에 추종하여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적대시정책에 집요하게 매여달리고있다.

더우기 이미 다 해결된 《랍치문제》를 걸고 가짜 유골문제까지 조작하면서 조일평양선언을 백지화하고 국교정상화를 하지 않겠다는 일본과 어떻게 한자리에 마주앉아 회담할수 있겠는가. 사상과 리념,제도와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평화와 공존,번영을 지향하여 나가는것은 새 세기의 시대적흐름이며 인류의 념원이다.

지금 온 세계가 이러한 시대적흐름에 역행하는 부쉬행정부야말로 극도의 인간증오사상으로부터 《폭압정치》를 자행하는 집단이라고 저주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것이 결코 우연하지 않다.

우리는 부쉬행정부가 취임한 이래 지난 4년간 아량을 보일만큼 다 보였고 참을만큼 다 참아왔다.

이제 또다시 4년을 지금처럼 지낼수 없으며 그렇다고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4년동안 반복할 필요도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으로 하여 조성된 엄중한 정세에 대처하여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첫째,우리는 6자회담을 원했지만 회담참가명분이 마련되고 회담결과를 기대할수있는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조성되였다고 인정될때까지 불가피하게 6자회담참가를무기한 중단할것이다.

6자회담과정이 지금과 같이 교착상태에 빠지게된것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때문이다.

부쉬행정부가 이번에 적대시정책을 초과하여 회담상대방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락인하면서 우리를 전면부정한 조건에서 6자회담에 다시 나갈 그 어떤 명분도 없다.

둘째,미국이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것이다.

선의에는 선의로, 힘에는 힘으로 대응하는것이 선군정치를 따르고 있는 우리의 기질이다.

우리는 이미 부쉬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고립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하였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우리의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자위적핵억제력으로 남아있을것이다.

오늘의 현실은 강력한 힘만이 정의를 지키고 진리를 고수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미국의 무분별한 망동과 적대적기도가 로골화될수록 우리는 일찌기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천만군민의 일심단결과 자위적국방력을 백방으로 강화해온데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게 될뿐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원칙적립장과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최종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2005 2월 10일 평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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